바로 2주전에 엄마가 우리 서연이를 보러오셨다.

바로 할머니와 손녀의 상봉이라고 할까나..
무엇보다도 서연이가 친할머니의 사랑을 받을수있는 시간이여서 좋았다고나 할까..
이때를 틈타 난 학교에서 열린 학회를 잠시 들러줬다.
다른것은 별로 관심없었지만, Micheal Wesch의 연설은 보고싶었다.
이사람은 캔자스 시티 대학교수인데 디지털 인류학, 교육에 꽤나 임팩트있는 일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뭐 자세한것은 나중에 애기하기로하고...
연설중에 이 교수가 제3국가 어느 지역에 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그중 identity... 즉 정체성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보통 정체성하면 자신을 가리키지만, 이 부족은 내가 아닌 나와 여러사람이 묶여있는 관계가 바로 그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나 보여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의 정체성도 또한 하나가 아닌 나와 웃사람과의 관계, 후배와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을까?
아주 간단한 예로 회사에서 6시가 되었는데 부장이 퇴근을 안한다...
과연 난 퇴근할수있을까? 뭐 할수야있겠지만..앞으로 회사생활이 순탄하지 않을것 같다는 직감은 든다.
미국은 안그런곳도 있지만, 퇴근한다. 내가 중요하니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내가 회사에서 들어가고 그 집단에서 가지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이것은 소샬 관계라고 해석할수도 있겠지만, 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분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10분넘개 안온다고 해보자.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충분히 "아 버스 디게 안오네"라고 말을 건넬수가 있다.
이때 일반적으로 대답은 "아 그러네요, 저번에는 20분넘게 기달려봤는데.."
그러면서 서로 자신의 경험담을 기준으로 대화를 해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말걸어오면, "네"라고 애기하거나 그냥 무시하는 경우가있다.
이것은 둘사이의 관계가 아직 성립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체성이 아직 형성이 안된것이다.
내가 가지고있는 정체성은 뭐 이러이러한 관계망을 가지고있다면, 다른사람이 가지고있는 정체성은 다른 관계망을 가지고있을 것이다. 하지만 둘사이에서 그 겹치는 관계가 없다면, 굳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아 쓰다보니 아직 약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것 깉지만, 결론으로 들어가자면,
오히려 우리가 영어를 못하고, 그리고 힘들다고 생각하는부분은 되리어 정체성의 차이가 아닐까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미국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을수도 있고, 살아온 방식도 틀린데, 말이 당연히 터지지않는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즉, 말을 못한다기보다는 할말이 없는것이 아닐까?
내가 이 사람과 대화에서 얼마나 더 말을 이끌어가야할까...
그런점이 아닐까..란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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